미술관으로 향하는 험난한 여정, 그리고 인산인해
오랜 시간 기다려온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한국 전시. 원래는 전시장 문이 열리는 오전 10시 첫 타임에 조용히 관람하고 싶었으나, 표가 순식간에 매진되는 바람에 동생과 함께 오후 2시로 예매해 집을 나섰습니다.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MMCA)으로 향하는 길은 시작부터 험난했습니다. 하필이면 다음 날 종로 일대에서 열리는 방탄소년단(BTS)의 대규모 공연 준비로 인해 도로 교통이 전면 통제되고 있었죠. 택시나 버스는 진입조차 불가능했고, 걷기엔 멀어 평소 자주 타던 ‘따릉이’마저 해당 구역은 대여와 반납이 모두 제한된 상태였습니다.
결국 통제선 밖에서부터 미술관까지 매연과 엄청난 인파를 뚫고 하염없이 걸어야만 했고, 전시장 입구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육체적인 진이 다 빠져버린 기분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선 전시장 역시 평일 오후 2시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관람객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과거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론 뮤익(Ron Mueck) 전시 때의 붐비던 현장이 겹쳐 보일 만큼, 거장을 향한 대중의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마일드한 첫인상: 초기작, 스폿, 그리고 부유하는 공
1층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그 유명한 상어가 저를 맞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첫 전시관은 비교적 ‘마일드(mild)‘한 분위기 속에서 허스트의 초기 작업과 회화적 실험들을 조명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우리가 흔히 아는 기계로 찍어낸 듯 완벽한 원형의 ‘스폿(Spot)’ 시리즈가 아니었습니다. 붓으로 대충 형태를 잡고 색칠한 듯 투박하고 자유로운 초기 스폿 작품들이 걸려 있었죠. 이어서 두꺼운 물감 덩어리들이 시각적인 달콤함을 자아내는 ‘비주얼 캔디(Visual Candy)’, 그리고 캔버스를 회전시키며 원심력으로 물감을 흩뿌린 ‘스핀 페인팅(Spin Painting)‘들이 전시되어 있어 그의 초기 궤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흥미로웠던 건 공기를 이용해 공을 띄우는 설치 작품들이었습니다. 헤어드라이어로 작은 탁구공을 공중에 띄우고 있는 소박하고 위트 있는 형태부터, 커다란 공을 허공에 부유하게 만드는 작품까지 다양했습니다. 모터 소리와 함께 끊임없이 위태롭게 허공을 맴도는 공들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천안 아라리오 미술관에 있는 그의 1999년 작 <탭댄스를 추는 예수(Jesus, H. Tap Dancing Christ, I’ve Seen the Light)>가 떠올랐습니다. 가벼운 탁구공 하나에서 시작된 위트 있는 실험이 어떻게 물성과 철학적 무게를 지닌 설치 미술로 확장되어 갔는지, 그 궤적을 눈으로 확인하는 듯해 무척 흥미로운 도입부였습니다.
약장과 수술실: 현대의 종교가 된 의학
조금 더 동선을 따라가자 분위기가 서서히 차갑게 반전되었습니다. 허스트가 평생에 걸쳐 천착해 온 또 다른 핵심 주제인 ‘의학’ 관련 작품들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알약 병과 약 상자들이 강박적일 만큼 가지런히 진열된 약장(Medicine Cabinets) 시리즈, 그리고 차갑고 살벌한 금속성의 수술방 설치 작업들을 마주했습니다. 허스트에게 의학은 죽음을 지연시켜 줄 것이라는 현대인의 맹신을 상징하는 ‘새로운 종교’와도 같습니다. 생명을 연장하려는 인간의 처절한 욕망과, 그 임상적 환경이 주는 특유의 차가운 공포가 전시장 전체에 묘한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었습니다.
찰스 사치와 상어: 테세우스의 배를 마주하다

서늘한 임상 실험실 같은 공간을 지나자, 마침내 저를 압도하는 작품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상어,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입니다. 영국의 거물 컬렉터 찰스 사치(Charles Saatchi)의 전폭적인 지원과 의뢰로 제작되어 무명이었던 허스트를 단숨에 스타덤에 올려놓은, 현대미술사의 거대한 분기점과도 같은 작품이죠.
포름알데히드 수조 속에서 부유하는 거대한 뱀상어를 직접 마주하니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과 의문이 교차했습니다. 1991년 처음 만들어졌던 오리지널 상어는 부패가 심해져 2006년에 다른 상어로 교체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눈앞에서 서서히 상해가고 있는 저 거대한 육신을 보며, ‘내용물이 통째로 교체된 이 상어를 과연 오리지널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철학적 의문이 들었습니다. 마치 ‘테세우스의 배’처럼 말이죠.
게다가 현실적인 궁금증도 꼬리를 물었습니다. ‘도대체 이 거대한 수조와 상어를 영국에서 한국까지 어떻게 옮겨온 걸까?’

수조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상어를 고정하는 와이어가 보이긴 했지만, 항공 화물의 그 거친 진동과 충격을 견뎌낼 만큼 튼튼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작품의 아우라 뒤에 숨겨진 그 험난했을 운송 과정과 천문학적인 대여 및 보험료를 상상하니 새삼 감탄이 나왔습니다.
<천년(A Thousand Years)>: 시간의 흐름과 썩어가는 냄새
상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부패와 생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천년 (A Thousand Years)> 앞에 섰습니다.

유리 상자 안에서 파리들이 태어나고, 잘린 소머리의 피와 살을 파먹으며 번식하다가, 결국 포충기에 타 죽는 과정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작품입니다.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에서 새로운 소머리를 공수해다 놓은 것일까요? 지금은 전시 초기라 시각적인 불쾌감이 더 크지만, 전시가 중반을 넘어갈수록 유리관 틈새로 지독한 썩은 내가 진동한다고 하더군요. 죽음이 관념이 아닌 지독한 후각적 현실로 다가오는 그 순간을 확인하기 위해, 전시가 끝날 즈음 다시 한번 방문해 봐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차가운 죽음의 징후들로 가득했던 앞선 공간들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에너지였습니다. 강렬하고 두꺼운 물감 자국으로 거대한 캔버스를 가득 채운 화사한 벚꽃들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찬란하게 피어났다 순식간에 져버리는 덧없는 생명력의 절정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신의 사랑을 위하여>: 어둠 속 서늘한 숭고함
그리고 1층 관람의 대미이자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수많은 인파에 치이며 쌓였던 피로감은 어둡게 조성된 독립된 공간으로 들어서는 순간 완벽하게 휘발되었습니다.


<신의 사랑을 위하여 (For the Love of God)>. 8,601개의 무결점 다이아몬드가 촘촘하게 박힌 백금 해골이 어둠 속에서 홀로 영롱하고 서늘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매체를 통해 이미 너무나 익숙해진 도상이었음에도, 실물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경외감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인간이 가장 갈망하는 극강의 사치(다이아몬드)와 결코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공포(죽음)가 하나의 물성으로 완벽하게 결합된 모습. 가만히 그 빛을 응시하고 있자니 묘한 감동마저 밀려왔습니다.
이 숭고한 해골을 중심으로 공간의 배치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해골의 뒤편으로는 수많은 나비 날개로 만들어진, 마치 중세 성당의 3면 병풍 제단화(Triptych)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종교화 같은 작품이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겉은 아름다운 천사의 형상이지만 속은 근육과 장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대리석 조각 <천사의 해부학(Anatomy of an Angel)>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을 보니 영종도 파라다이스 시티에 전시된, 반쪽 근육이 드러난 신화 속 페가수스 조각 <골든 레전드(Golden Legend)>와 천안 아라리오 조각광장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인체 해부 모형 조각 <찬가(Hymn)> 시리즈가 자연스레 머릿속에 겹쳐졌습니다. 숭고한 신화적 존재나 아름다운 인체의 겉껍질을 벗겨내어 그 이면의 생물학적이고 유한한 실체를 기어코 드러내 보여주는 방식. ‘보이는 것과 그 이면’, 그리고 떼어놓을 수 없는 ‘생과 사의 공존’이라는 허스트의 일관된 철학적 메시지를 다시금 묵직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층 작업실, 벚꽃의 생명력, 그리고 의 묘한 위화감
지하 1층에서의 강렬한 경험을 뒤로하고 2층으로 올라가니, 데미안 허스트의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해 둔 흥미로운 공간이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그 뒤편으로는 그의 상징과도 같은 나비 시리즈들이 전시되어 있었죠. 저는 그곳에서 제가 소장하고 있는 판화 연작인
진위 여부를 떠나, 제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의 원류를 미술관 벽면에서 마주한다는 것은 컬렉터로서 꽤나 반가운 경험이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은 뒤로하고, 5점 중 한가운데에 걸려 있던 제 소장품 <테오도라(Theodora)> 앞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남겼습니다.
전시장을 나서며
돌아가는 길 역시 교통 통제로 쉽지 않았지만,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습니다. 책에서나 보던 미술사의 거대한 논란들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원본성이란 무엇인지, 예술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지 끝없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 밀도 높은 시간이었습니다.
현대미술이 줄 수 있는 숭고함과 지독한 현실 감각이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이 엄청난 인파와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꼭 한번 다녀오시기를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