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박서보 묘법: 밀어낸 한지의 이랑 앞에서
연희동 골목을 걸어 올라가다 보면 주택가 한가운데에 느닷없이 노출콘크리트 건물이 나타난다. 박서보가 살면서 작업하던 집 바로 옆이다. 2026년 8월 21일에 문을 열었으니, 내가 찾아간 날은 개관한 지 겨우 2주쯤 되던 참이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미술관에는 그 자체로 기분 좋은 구석이 있다. 벽 모서리가 아직 날카롭고, 바닥에는 눌린 자국 하나 없고, 층마다 뚫어 놓은 큰 창으로 바깥의 초록이 그대로 들어온다.
그중에서도 기둥 앞에서는 한참을 서 있었다. 모서리가 그야말로 칼같이 서 있어서,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이라면 저기에 부딪히면 크게 다치겠다는 걱정이 먼저 들 정도다. 그런데 그 날카로움이 건물 전체에서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고 반복되다 보니, 위험하다는 느낌이 어느 순간 지독하게 질서정연하다는 감탄으로 바뀌었다. 더 신기했던 것은 표면이다. 노출콘크리트라면 으레 남기 마련인 거푸집 이음선이나 폼타이 자국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설계는 쌈지길과 대구간송미술관을 한 건축가 최문규다.

1. 지하 1층은 주차장: 아래에서 시작해 올라오는 전시
들어가서 조금 당황했다. 지하 1층이 주차장이고, 전시는 그 아래 지하 2층에서 시작한다. 주차장이라고는 해도 자리가 몇 대 안 되어서, 미술관도 인근 유료 주차장을 쓰라고 안내하고 있다. 미술관이라고 하면 1층 로비에서 출발해 위로 올라가는 그림을 그리고 갔는데, 여기서는 일단 지하 맨 아래까지 내려간 다음 지상 3층까지 다시 올라오게 되어 있다. 다섯 개 층에 연면적 2,000㎡, 우리 식으로는 600평 남짓이다. 제일 좋은 것을 맨 마지막에 내주겠다는 구조인 셈이다.

지하 2층에 걸린 것은 1990년대의 흙빛 작업들이다.
2. 2층의 붉은 그림: 저 색은 무엇으로 냈을까
한 층 올라오면 화면에 색이 들어온다.

그중에서 나를 붙잡은 것은 아주 강렬한 붉은 그림이었다. 보면서 계속 머릿속을 맴돈 생각은 엉뚱하게도 “저 붉은색을 도대체 무엇으로 낸 걸까"였다.


한지로 만든 화면이니 색도 자연에서 온 것이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닥나무 껍질을 삶아 뜬 종이에 쪽이나 치자 같은 천연 염료를 들였을 거라고, 그래서 저 색이 저렇게 깊게 가라앉아 있는 거라고 혼자 결론을 내려 두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 와서 찾아보고 나서야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한지인 것은 재료뿐이고, 색은 아크릴 물감이다.
자연에서 온 것은 종이와 형태다. 닥나무 껍질로 뜬 한지를 캔버스에 여러 겹 배접해 두께를 만들고, 물에 불린 상태에서 나무막대와 손으로 밀어 이랑을 세운다.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밀어내는 것이고, 도구가 형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재료가 힘을 받아 스스로 형태가 되는 방식이다. 그런데 그 위에 얹히는 색만큼은 화방에서 온다.
오해할 만한 이유는 있었다. 그가 2000년 이후 쓴 색 이름이 전부 자연에서 채집한 것이기 때문이다. ‘공기색’, ‘단풍색’, ‘제주 유채꽃 노랑’. 일본 여행에서 단풍을 보고 “빛과 바람이 계속 움직이면서 잎의 색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에 감명받아 색을 들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까지 붙어 있으니, 안료도 자연에서 왔으려니 넘겨짚기 딱 좋다. 자연에서 온 것은 안료가 아니라 색의 이름이었다.
알고 나서 실망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다만 이 그림들은 ‘자연의 재료로 만든 그림’이라기보다 ‘자연에서 이름을 빌려온 산업 재료의 그림’이라고 부르는 편이 사실에 가깝고, 나는 그 사실을 알고 보는 쪽이 훨씬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각도가 바뀌면 색도 바뀐다
이랑이 세워진 화면이라 서는 자리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비스듬히 서면 골이 검은 선으로 조여들어 짙어지고, 정면으로 다가올수록 화면이 밝게 풀린다. 사진 한 장으로는 설명이 안 돼서 영상으로 남겼다.
3. 천장 8미터의 방: 별세 아홉 달 전의 흰 그림
3층에 올라서면 천장이 8미터쯤 되는 정사각형 방이 나오고, 그 안에 흰 그림 세 점이 걸려 있다.
묘법 No.230127 · No.230128 · No.230129 (2023)
(Écriture)
각 330 × 192cm, 캔버스에 한지와 혼합매체. 박서보는 1987년 무렵부터 작품 제목을 No.연월일 형식으로 붙였으니, 230127은 2023년 1월 27일이라는 뜻이다. 그는 그로부터 한 달 뒤인 2월에 페이스북으로 폐암 3기를 알렸고, 그해 10월 14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까 이 방에 걸린 세 점은 자신의 병을 세상에 알리기 직전에 그린 그림들인 셈이다.
빛이 특히 좋았다. 반투명 유리를 통과한 자연광이 고르게 떨어지는데, 조명기구로 한 점을 때리는 방식이 아니라 방 전체가 함께 밝아지는 쪽이어서,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림 표면의 요철이 조금씩 다르게 읽힌다.
그 앞에 서면 그림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들으려는 노력을 저절로 그만두게 된다. 3.3미터짜리 흰 면이 시야를 통째로 덮어버리고, 가까이 다가서면 한지를 밀어 만든 이랑이 손가락 굵기로 줄줄이 서 있는 것이 보이다가, 뒤로 물러나면 그 이랑들이 다시 하나의 커다란 흰 면으로 합쳐진다. 압도적이라는 말 말고는 달리 붙일 말이 없었다.
이 흰색 역시 그냥 흰색이 아니다. 그는 순백을 피하고 늘 톤을 조절한 흰색을 썼는데, 재단 쪽 설명으로는 “조선백자의 회백빛과 삼베의 누르스름한 빛, 표백하기 전 자연 그대로의 흰색"에 가깝다고 한다. 그가 평생 가장 좋아한 미술품이 달항아리였다는 것을 떠올리면 앞뒤가 맞는 이야기다.
같은 층에서 흐엉 도딘(Huong Dodinh)의 흰 작업도 볼 수 있지만 이 방이 아니라 옆 공간에 따로 걸려 있어서, 두 사람의 흰색을 한자리에서 맞대어 보게 되지는 않는다.

사진을 한 장 찍고 나서는 조금 부끄러웠다. 그날 입고 간 옷이 하필 작품과 비슷한 색에 비슷한 줄무늬여서, 이 작가를 대체 얼마나 좋아하면 옷까지 맞춰 입고 왔을까 싶었다.

4. 빠진 출발점: 영상으로만 남은 연필 묘법
여기서부터는 아쉬웠던 이야기다.
개관전에 걸린 박서보 작품 25점은 전부 후기 묘법이다. 지하 2층에 1990년대의 흙빛 작업이 있고, 2층에 검은색과 색채 묘법이 있고, 3층에 백색 묘법이 있다. 시기가 조금씩 다르고 색이 확연히 다르지만, 한지를 배접해 밀어 올린다는 만드는 방식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다.
묘법은 50년 넘게 이어진 단일 연작이고, 그 안에서 방법이 크게 세 번 바뀌었다. 1967년부터 1980년대 초까지의 연필 묘법은 유백색 유채를 고르게 깔고 마르기 전에 연필로 같은 선을 반복해 긋는 방식이었다. 물감이 밀려 융기하고 흑연이 물감과 섞이면서 표면이 반투명한 층으로 쌓인다. 1982년부터 1993년까지의 한지 묘법은 지금 이 미술관에서 보는 그 방식으로, 회화가 반쯤 부조가 되는 지점이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의 후기 색채 묘법은 같은 방식에 아크릴 색을 들이고 손의 흔적을 지워, 색면과 이랑의 리듬만 남긴 것이다.
그러니까 이 전시에는 묘법의 출발점이 통째로 빠져 있다. 1967년, 세 살배기 둘째 아들이 형이 쓰던 국어 공책의 네모 칸 안에 글자를 집어넣으려고 애쓰다가 안 되니까 빗금을 쫙 긋고 포기하는 장면을 보고 시작된 그 작업 말이다. 박서보는 거기서 실패가 아니라 ‘체념의 정서’를 읽었다고 했다. 그리는(painting) 행위가 아니라 쓰는(writing) 행위로서의 회화가 여기서 나왔고, 그래서 이름이 묘법이고 Écriture다.
제일 아쉬웠던 건 그 이야기가 미술관 안에 분명히 있었다는 점이다. 미디어룸에서 상영하는 영상은 아들의 낙서에서 시작된 연필 묘법의 내력을 꽤 공들여 설명한다. 그런데 영상을 다 보고 전시실로 나오면 정작 그 이야기에 해당하는 작품이 한 점도 없다. 방금 들은 것을 눈으로 확인할 자리가 없으니, 설명과 전시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셈이다.
시작이 없으니 남은 것은 완성된 방법의 반복이다. 작품 하나하나는 크고, 하나하나 앞에 서면 확실히 강하다. 그런데 세 개 층을 다 돌고 계단을 내려오면서는 같은 문장을 색만 바꿔 가며 여러 번 읽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분위기와 인상은 확실히 남는데, 정작 머리에 남는 것은 생각보다 적다.
조금 억울한 마음에 찾아보니, 이 미술관이 소장한 박서보 작품은 3,000점이 넘는다고 한다. 없어서 못 건 것이 아니라 안 건 것이다.
물론 변명할 여지는 있다. 개관전은 회고전이 아니라 2인전이다. 제목이 《박서보와 흐엉 도딘: 비움 그 충만》이고, 박서보 25점에 베트남계 프랑스 작가 흐엉 도딘의 17점을 더해 모두 42점이다. 두 사람은 2023년 여름, 그러니까 박서보가 세상을 떠나기 세 달 전에 처음 만났다고 한다. 재단 이사장 박승호도 개관에 맞춰 “성전(聖殿) 만들 일 없습니다”, “박서보를 기념하는 곳이 아니라 동시대 플랫폼"이라고 말했으니, 그 방침대로라면 개관전을 연대기 회고전으로 짜지 않은 쪽이 오히려 일관된 선택이다. 머리로는 납득이 되는데, 처음 온 관람객으로서는 여전히 아쉬웠다.
5. 국제갤러리 《변하는 변하지 않는》: 없는 것을 채우러
아쉬운 김에 며칠 뒤 삼청동으로 갔다. 국제갤러리에서 《변하는 변하지 않는》이 2026년 10월 18일까지 열린다. 제목은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러나 변하면 또한 추락한다"는 그의 말에서 왔고, K1과 K3, 그리고 한옥까지 세 공간에 1967년부터 2023년까지 40점이 걸린다.
미디어룸에서 설명만 듣고 나왔던 그 연필 묘법이 K1에 있었다.
미술관에서 본 한지 묘법이 손으로 밀어 세운 이랑이라면, 이쪽은 물감이 마르기 전에 연필이 지나가면서 밀려 올라온 아주 얕은 융기다. 흑연이 물감 안에 섞여 들어가 표면이 반투명한 층으로 겹쳐 있는데, 미네무라 도시아키가 이 화면을 두고 “구조화된 반투명성"이라고 부른 것이 이것이다.
같은 자리에 검은 묘법과 색채 묘법도 함께 걸려 있어서, 연필에서 한지로, 한지에서 색으로 넘어가는 순서가 한 줄로 놓인다. 미술관에서 완성형만 크게 맞고 나온 뒤에 오기에 좋은 순서였다.
6. 치유의 그림과 광주의 기억: 한 사람 안의 두 서사
이 미술관을 다녀왔다고 하면 한 번은 따라 나오는 이야기가 있어서 짧게만 적어 둔다. 2022년 박서보는 광주비엔날레에 100만 달러를 기부해 자기 이름을 붙인 예술상을 만들었는데, 이듬해 “민주화운동을 외면한 인물"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첫 시상 한 달 만에 상이 폐지됐다. 오랫동안 화단의 권력자였고 그만큼 시대에 순응했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다. 그런데 반대편의 사실도 있다. 1970년 오사카 엑스포 한국관에 올린 설치작 〈허의 공간〉은 반정부 내용 논란으로 철거됐다. 순응한 이력과 검열당한 이력이 한 사람 안에 같이 있는 셈인데, 어느 한쪽을 지우고 요약하지 않는 것이 이 사람에 대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태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7. 커플 데이트로 추천하는 이유: 작품보다 공간
아쉬운 이야기를 실컷 늘어놓았지만 결론은 이렇다. 나는 다시 갈 것이고, 누가 커플끼리 갈 만한 전시를 물으면 여기를 말할 생각이다.
이유는 작품보다 공간 쪽에 있다. 새로 생긴 미술관이라 어디를 봐도 깨끗하고, 창이 커서 바깥의 초록이 그림 옆에 나란히 걸린 것처럼 보인다. 동선이 지하 맨 아래에서 지상으로 계속 올라가는 구조라 마지막 3층에서 천장이 확 열릴 때의 낙차가 크다. 규모도 딱 알맞다. 다 보는 데 한 시간 안팎이면 되니 지치기 전에 끝나고, 나와서 연희동 골목을 걸으면 카페든 밥집이든 그다음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연희동 데이트 코스의 앞자리에 놓기에 좋은 조건이다.
무엇보다 이건 말이 별로 필요 없는 전시다. 아는 만큼 보이는 종류의 그림이 아니라 그냥 앞에 서 있으면 되는 그림이라,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과 함께 가도 어색해질 일이 없다. 둘이 나란히 3층에 올라가면 아무 말 없이 조용해지는 순간이 온다. 데이트로 추천하는 이유는 사실 그거면 충분하다.
박서보는 제주 미술관 기공식에서 “모든 사람이 여기 와서 그림을 보고 나면 속에 응어리졌던 것들이 풀려 치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제주가 아니라 연희동에서 들은 말이지만, 그 방에 서 있는 동안은 절반쯤 맞는 말 같았다.
관람 정보
박서보미술관 서울
박서보미술관은 2026년 8월 21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문을 연 사립미술관이다. 박서보재단이 운영하며, 개관전 《박서보와 흐엉 도딘: 비움 그 충만》은 2027년 1월 3일까지 열린다.
| 항목 | 내용 |
|---|---|
| 주소 |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24길 9-54 (03723) |
| 관람시간 | 화–일 11:00–18:00. 발권은 17:30에 마감된다 |
| 휴관 | 매주 월요일 |
| 관람료 | 5,000원 |
| 예약 | 필요 없다. 현장 발권으로 입장한다 |
| 도슨트 투어 | 화–금 14:00 / 토·일 14:00·16:00. 예약 없이 현장 참여 |
| 주차 | 지하 1층에 주차장이 있지만 매우 협소하다. 미술관도 인근 유료 주차장 이용을 권한다 |
| 규모 | 지하 2층~지상 3층, 연면적 2,000㎡(약 600평). 전시실 3곳과 층별 정원. 전시는 지하 2층에서 시작해 위로 올라간다 |
| 출품작 | 42점 (박서보 25점 + 흐엉 도딘 17점) |
| 건축 | 최문규 |
| 문의 | 02-336-7927 |
국제갤러리 《변하는 변하지 않는》
박서보 3주기 개인전 《변하는 변하지 않는》은 2026년 8월 24일부터 10월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제갤러리 K1·K3·한옥 세 공간에서 열린다. 박서보미술관에 없는 1967년 연필 묘법이 여기에 있다.
| 항목 | 내용 |
|---|---|
| 주소 | 서울 종로구 삼청로 54 (03053) |
| 기간 | 2026년 8월 24일 – 10월 18일 |
| 공간 | K1 · K3 · 한옥 |
| 관람시간 | 월–토 10:00–18:00 / 일·공휴일 10:00–17:00 |
| 관람료 | 무료 |
| 주차 | 주차장이 없다. 인근 공영·유료 주차장을 써야 한다 |
| 출품작 | 40점. 1967년 연필 묘법부터 2023년 신문 묘법까지 |
| 문의 | 02-735-8449 |
참고자료
- 박서보미술관 공식 안내 — parkseobomuseum.org (관람시간·발권 마감·예약·도슨트·주차·주소·문의) · 박서보재단 — parkseobofoundation.org
- 국제갤러리 — 서울 갤러리 안내 (주소·관람시간·주차·문의)
- 한국경제, 「미술관 생기면 걸겠다던…박서보 마지막 백색 묘법 나왔다」 — 3층 백색 묘법 세 점의 제목·크기, 8m 전시실, 층별 구성, 관람 정보
- 한국경제,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3주기에 박서보를 돌아본다」 — 국제갤러리 《변하는 변하지 않는》 구성과 시기 구분
- 경향신문, 「박서보의 예술세계, 동시대와 잇다···연희동에 박서보미술관 개관」 — 건축·규모
- K-ARTNOW, 「세대를 잇는 예술 공간 ‘박서보미술관 서울,’ 8월 21일 개관」 — 소장 3,000여 점, 재단의 운영 방향
- 하퍼스 바자 코리아, 「연희동 더 핫해질 준비 완, ‘박서보미술관’ 8월 개관」 — 주소
- 묘법 3단계의 기법 구분, ‘공기색·단풍색’ 색명, 1967년 착상 일화, 광주비엔날레 박서보예술상 제정과 폐지의 경위는 별도로 정리한 자료를 따랐다
- 작품 제목·크기·재료는 전시장 캡션과 위 보도 기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