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궤도를 이탈한 개인들을 향한 시선

[Book]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궤도를 이탈한 개인들을 향한 시선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책 표지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1. 하드 SF를 기대하며 펼친 책: 칼 세이건 대신 만난 감정선

본문보다 작가 소개를 먼저 읽었다. 김초엽은 포스텍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생화학으로 석사를 밟으며 열대 감염병을 진단하는 바이오센서를 연구하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 이력을 읽는 순간 내 기대는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평소 테드 창의 단편이나 조지 오웰의 《1984》처럼 묵직한 구조와 철학적 사유가 뼈대를 이루는 하드 SF를 좋아했던 터라, 과학을 제대로 배운 사람이 쓴 정통 SF, 이를테면 칼 세이건 쪽에 가까운 무언가가 나오리라 생각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내가 기대한 그 책이 아니었다. 거대한 세계관도, 복잡한 과학적 뼈대도 이 단편집이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미래를 배경으로 삼되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얇고 섬세한 감정선을 따라가는, 소프트 SF라고 부르는 편이 정확한 일곱 편의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책은 나를 끝까지 끌고 갔다. 거창한 구조가 없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 만큼, 작가가 세계를 쌓아 올리는 방식이 섬세하고 또 세련됐기 때문이다.

2.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노인 안나와 ‘이동선’이라는 단어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세계관을 설명하지 않고 심어 두는 방식이었다. 표제작에서 작가는 안나를 한참 동안 그저 ‘노인’으로만 부른다. 독자가 그 사람의 성별을 인지하게 되는 것은 이야기가 꽤 진행된 뒤이고, 그때쯤이면 우리는 이미 안나를 성별이 아니라 기다림이라는 상태로 먼저 알고 있다. 우주 이동이 보편화된 환경도 마찬가지여서, 작가는 그 시대를 설명하는 대신 배를 ‘이동선’‘탐사선’으로 갈라 부른다. 우주선이 더는 특별한 물건이 아니라 용도에 따라 이름이 나뉘는 일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단어 두 개로 끝난다.

페미니즘이나 소수자 문제를 다루는 태도도 그랬다. 이런 주제는 자칫 독자에게 피로감이나 불쾌감을 주기 쉬운데, 이 책은 어느 지점에서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그것을 세계의 조건으로 녹여 놓는다. 남녀 성비가 극단적으로 기운 공대에서 작가 본인이 겪었을 법한 대우와 인식의 차이가 날 선 고발이 아니라 부드러운 은유의 형태로 이야기 안에 앉아 있는데, 나는 이 프로페셔널함이 이 책에서 가장 좋았다.

3. 제목에 없는 제목: 〈스펙트럼〉이 감춘 빛의 파장

이공계를 전공한 독자로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것은 〈스펙트럼〉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정작 소설 안에 ‘스펙트럼’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중 외계 생명체 루이와 인간 희진은 가청주파수 대역이 서로 달라 소리로는 소통하지 못한다. 나는 이 설정을 읽으면서 청각의 차이가 결국 시각의 차이로 이어지리라 유추했다. 스펙트럼은 분광기로 빛을 갈라 보는 장치이고, 지구에도 RGB 세 자극을 넘어 더 넓은 색을 구별해 내는 사람이 존재하니, 루이와 희진 역시 눈으로 받아들이는 빛의 영역 자체가 서로 달랐을 것이다. 같은 색인데도 다르다는 소설 속 표현은 그래서 비유이기 전에 사실에 가깝다. 서로 완전히 다른 존재가 같은 세상을 어떻게 나눠 갖는가를, 작가는 파장이라는 물리량 하나로 설명해 버린 셈이다.

제목이 본문에 없는 이유도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그 단어를 독자가 직접 찾아내는 데까지가 이 소설이다.

4. 안나와 재경의 상반된 선택: 궤도를 이탈할 권리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과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를 나란히 놓으면 두 주인공이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보인다. 안나는 자신의 연구를 마무리하기 위해 배에 오르는 시점을 뒤로 미뤘고, 그 미룸이 끝내 돌아갈 항로를 잃게 만든다. 반면 재경은 국가와 사회가 씌워 준 우주 영웅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스스로 벗어던지고 정해진 궤도 바깥으로 사라지는 쪽을 택한다.

어느 선택이 더 옳은지를 따지고 싶지는 않다. 나는 두 사람의 선택을 모두 존중하고 싶다. 거대한 국가나 권력이나 시스템이 개인에게 삶의 방향을 강요할 수는 없고, 궤도를 벗어나는 일이 곧 실패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5. 화학과 석사에서 소설가로: 작가 자신의 궤도 이탈

재미있는 것은 이 주인공들의 궤도 이탈이 작가 본인의 삶과 묘하게 겹쳐 보인다는 점이다. 포스텍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생화학 석사를 밟으며 정규 과학자의 트랙 위를 걷던 사람이, 그 트랙에서 내려와 소설가라는 전혀 다른 길을 골랐다. 2017년 한국과학문학상에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함께 내 대상과 가작을 동시에 받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안나와 재경이 보여 준 주체적인 이탈과, 실험실을 나와 원고지 앞에 앉은 사람의 선택은 아마 같은 종류의 결심일 것이다. 그렇게 읽고 나니 이 단편집이 왜 자꾸 궤도를 벗어난 사람 쪽으로만 시선을 두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6. 글을 마치며: 습작 같은 반짝임, 그래도 남는 온도

솔직히 아쉬운 부분도 있다. 작가의 초기 단편들을 모은 책이라 그런지 이야기의 깊이와 길이가 고르지 않고, 이제 본격적으로 전개되겠다 싶은 지점에서 툭 끝나 버린다는 인상을 여러 번 받았다. 도서관의 ‘관내 분실’ 규정에서 출발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거대한 주제의식보다는 반짝이는 아이디어 하나를 잘 다듬어 놓은 습작 같다는 느낌도 끝내 지우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분명하다. 첨단 기술이 난무하고 워프 항법으로 우주를 가로지르는 시대가 오더라도 결국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한 번도 놓지 않는다. 모든 것이 바뀐 시대에도 끝내 바뀌지 않을 외로움과 그리움, 그리고 스스로 고른 선택들이 일곱 편 내내 조용히 이어진다.

나도 언젠가 내 궤도를 벗어나야 하는 날이 온다면, 안나처럼 끝까지 기다리는 사람이거나 재경처럼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이고 싶다. 적어도 남이 그려 준 궤도 위를 떠밀리듯 도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