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하며: 왜 이 작품을 보았는가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의 시간>에 대한 글을 쓰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시리즈를 ‘편안하게’ 즐기지 못했다.
하지만 두 가지 이유가 나를 이 작품으로 이끌었다. 첫째, 매 화가 ‘원테이크(One Take)‘로 촬영되었다는 실험적인 기법. 둘째, 주인공 오언 쿠퍼(Owen Cooper)가 첫 작품임에도 최연소 연기 대상을 수상했다는 점. 그리고 넷플릭스 1위를 4주간 지켰다는 화제성까지 더해져,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다.
‘역겨움’이라는 칭찬에 대하여
나는 디스토피아적 작품이나 사회 고발물을 볼 때 독특한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다. 바로 “얼마나 역겨운가?”이다.
여기서 말하는 ‘역겨움’은 비위가 상한다는 뜻이 아니다.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부조리함과 인간의 바닥을 너무나 리얼하게 묘사해서, 보는 내내 속이 메스꺼울 정도로 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말한다. 내 기준에서 넷플릭스 <인간수업>이나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이 그랬다.
그리고 <소년의 시간> 역시, 그 ‘역겨운 명작’의 반열에 오를 만하다.
4편의 에피소드, 4번의 호흡
시리즈는 경찰특공대가 주인공 제이미(Jamie)의 집을 부수고 들어와 그를 체포하는 강렬한 씬으로 시작된다.
- 1편: 영문도 모른 채 구치소에 수감된 제이미와 혼란에 빠진 가족들.
- 2편: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며 살인 도구와 동기를 추적하는 경찰의 시선.
- 3편: 상담사와 제이미의 미묘한 심리전.
- 4편: 남겨진 가족들이 겪는 2차 가해와 파국.
처음엔 제이미의 결백 주장에 초점을 맞춘 추리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3, 4편으로 갈수록 반전보다는 인물의 감정 변화와 사회적 현상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심리 드라마에 가까웠다.
Ep 3. 영악한 10대의 민낯
3편은 상담사와 제이미의 대화로 채워진다. 저녁에 누워서 본 탓에 졸음이 쏟아지기도 했지만, 둘 사이의 ‘기싸움’은 소름 끼칠 정도였다.
제이미는 상담사가 유도하는 대로 끌려가는 척하다가, 어느 순간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상담사를 흔든다. 그러다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물건을 집어던지며 분노를 표출한다. 그 모습에서 보호받아야 할 ‘소년’이 아닌, 상황을 계산하고 이용하려는 ‘영악한 10대’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불쾌감마저 들었다.
Ep 4. 무너지는 아버지, 그리고 2차 가해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4편이다. 아버지의 생일날 아침, 동네 고등학생들이 집에 낙서 테러를 한다.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잔인한 2차 가해.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아버지의 급격한 감정 변화, 그리고 어머니와 딸이 느끼는 공포는 원테이크 기법 덕분에 마치 내가 그 현장에 서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불안하고, 불편하고, 도망치고 싶었다. 이것이 이 작품이 주는 ‘역겨움’의 정점이었다.
마치며: 해석의 차이, 그리고 남겨진 생각들
시리즈를 다 보고 나서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보았다. 흥미롭게도 이 스토리를 남성 위주의 권위주의를 비판하는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해석하는 글을 꽤 보았았다.
물론 해석은 자유지만, 나는 그 의견에 동의하기 어려웠고 반박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해당 블로거의 다른 글까지 찾아봤을 정도다.) 하지만 굳이 내 공간을 논쟁의 장으로 만들고 싶진 않기에,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만큼 층위가 복잡한 작품”이라는 점만 언급하고 넘어가려 한다.
<소년의 시간>은 편안한 킬링타임용 드라마가 아니다. 하지만 끊어지지 않는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가며, 한 가정이 무너지고 한 소년의 내면이 발가벗겨지는 과정을 목격하고 싶다면. 그 불편함을 견딜 준비가 되었다면 일독(一讀), 아니 일관(一觀)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