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 헤어질 걸 알면서도, 사랑하러 가는 용기

[Movie]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 헤어질 걸 알면서도, 사랑하러 가는 용기

영화 메인 커버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영화를 보고 나서 문득 든 생각. “여주는 25살에 남주는 안 만나나?”

헤어질 걸 뻔히 알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에미의 용기가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였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2005년 국내 개봉했던 일본 멜로의 수작 <지금 만나러 갑니다>와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참고로 이 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는 한국에서 2017년 10월 12일에 개봉했다.)

생각해보면 요즘 웹툰이나 소설의 대세는 단연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이다. 이런 소재가 유행인 걸 보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요즘 사람들의 가장 큰 희망인가 보다.

그런데 <지금 만나러 갑니다>도, 이 영화도 왜 결말은 슬픈 걸까? 현실에서 불가능한 ‘시간을 되돌리는 기회’를 썼으면서 굳이 슬픈 내용을 쓰는 이유가 궁금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로또를 사서 금전적 이득을 취하거나 행복한 인생 설계를 할 텐데 말이다. 영화에서 이런 현실적인 욕망을 보여주는 건 관객들의 기대와 너무 똑같아서 재미가 없기 때문일까?

어쨌든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화면 속 에미가 우는 장면에서 같이 울고 말았다.

1. 시간의 비밀 (설정 이해하기)

시간의 흐름 타임라인 두 사람의 시간은 반대로 흐른다

영화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제목에 숨겨진 비밀을 설명한다. 초반 20분도 안 되는 시점에 패를 까다니? 사실 제목을 보고 어느 정도 유추는 가능했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라는 문장 자체가 둘 사이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는 걸 암시하니까.

에미가 타카토시 집에 두고 간 수첩을 통해, 타카토시는 둘의 시간이 서로 반대로 흐른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에미의 설명에 따르면 둘은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고, 5년에 한 번 딱 30일만 같이 보낼 수 있다고 한다.

두 사람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 둘 다 5살 때 누군가 자신을 구해줬다는 것. 각자 나이가 들어가면서, 반대로 어려지고 있는 상대를 위험에서 구해주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가 되어주는 셈이다.

영화는 철저히 타카토시의 시점으로 서술된다. 그러다 영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 다시 에미의 시점으로 사건들을 나열해 준다. 약 10분 정도의 이 시퀀스가 진국이다. 에미의 시점을 더 정확히 이해해보고 싶어서 다시 돌려 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만뒀다. 아무래도 영화는 타카토시 시점으로 촬영됐을 테고, 에미의 시점은 실제 연기자도 상상에 의해 연기했을 테니 자세히 뜯어보면 어색할 것 같아서. 그냥 그 여운을 간직한 채 넘어가기로 했다.

2. 첫 만남, 그리고 눈물의 의미

영화의 시작. 남자 주인공 타카토시는 전철에서 에미를 처음 보고 한눈에 반한다. 빛을 받아 아름다운 에미를 보고 홀린 듯 기차에서 내려 고백하는 타카토시. 쑥맥인 그가 엄청난 용기를 낸 순간이다. 에미는 그런 타카토시에게 어떤 점이 좋냐고 묻고, 짧은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연락처를 묻는 그에게 에미는 휴대전화가 없다는 말과 함께, “내일 봐요”라는 말을 남기고 서럽게 운다.

첫 만남, 그리고 눈물의 이유

보는 당시에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됐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비로소 이해가 갔다. 타카토시에게는 설레는 첫 만남이었지만, 에미에게는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지는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울었던 것이다.

3. 운명의 15일 차, 스무 살의 연인

30일 중 딱 중간인 15일 차. 타카토시와 에미 둘 다 스무 살인 날이다. 타카토시는 전날 에미가 두고 간 수첩을 보고 오늘 설명을 들으려 한다. 반면 에미는 자신이 첫날(타카토시의 마지막 날)에 30일째의 타카토시에게 들었던 설명대로, 그리고 25살 타카토시가 넘겨준 수첩대로 학교로 찾아온다.

운명의 15일차

타카토시에게 “우리는 서로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고 얘기해 준 뒤, 둘은 같이 가족사진이 들어있는 상자를 열게 된다. 둘 다 놀랐을 거라 생각한다. 에미 입장에서도 이 상자를 ‘아직’ 타카토시에게 전달한 적이 없으니까. 상자 속 타카토시의 가족사진은 에미 2일 차에 찍은 사진이다. 아마 에미가 훗날 타카토시에게 이 사진을 넘겨주기 위해 빈 상자를 구입하고, 그 열쇠만 가지고 학교로 와서 자신이 미래에 전달할 상자를 열어본 것이리라. 이것이 에미가 타카토시와 만든 ‘루프’다.

이 날을 기점으로 타카토시와 에미의 ‘기억의 무게’는 역전된다. 이날 이후 두 사람은 각각 자기 앞에 있는 상대보다 더 많은 기억을 가지게 된다. 타카토시는 수첩에 적힌 대로만 행동하는 에미에게 “연기가 아니냐"며 화를 내고 싸우게 되지만, 곧 깨닫는다. 지금까지 만났던 에미는 뜬금없는 순간마다 울었다는 것을.

타카토시가 ‘처음’ 하는 행동이 에미에게는 항상 ‘마지막’이었음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울었던 것이다. 자정이 넘어 타카토시는 에미에게 전화해 아까 했던 말들은 진심이 아니었다며 사과한다.

4. 점점 사라지는 기억, 그리고 29일과 30일

15일이 지나고 난 뒤로는 점점 슬퍼진다. 에미는 갈수록 타카토시와의 추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타카토시에게 며칠 안 남은 29일 차, 둘은 타카토시의 부모님 집으로 향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 문득 내 개인적인 경험이 생각났다. 아직 서로가 편하기도 전에 혜인이에게 소개시켜 주고 놀았을 때의 기억. 그때의 묘한 긴장감과 설렘이 영화 속 장면과 겹쳐 보였다.

29일차, 부모님 집으로 향하는 두 사람

그리고 대망의 타카토시 30일 차. 화면 속 에미의 표정이 굉장히 어색하다. 그도 그럴 것이 에미 입장에서는 타카토시를 ‘처음’ 보는 상태니까. 5년 전에 자신에게 찾아와 줬던(타카토시 기준 25살) 타카토시가 준 수첩에 따라서, 모르는 상대의 모델이 되러 학교에 온 장면이다.

30일차, 에미의 첫날이자 타카토시의 마지막 날

첫 만남의 설렘, 그리고 정해진 운명을 향해 걸어온 에미의 용기, 거기에 나의 경험들까지 떠올라 가슴이 너무 아팠다.

5. 영화 보며 했던 엉뚱한 걱정 (ft. 막장 드라마?)

사실 29일 차에 아버지를 만났을 때 아버지 반응이 묘해지는 걸 보고 순간 긴장했었다. “설마 내가 감동받은 영화 망치지 말아 줘…”라며 속으로 기도했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간단하다. 에미 입장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이쪽 세계(타카토시의 세계) 사람들은 나이가 어려진다. 결국 에미와 타카토시의 아버지가 나이대가 비슷한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게다가 에미가 어린 시절 타카토시를 구해주기도 했고, 에미가 “아버지랑 닮았다"라고 말하는 장면까지 겹치니… 설마 족보가 꼬이는 막장 전개인가 하는 의심을 했다. (나만 그런가?)

다행히 영화는 그런 막장 드라마 길로 빠지지 않고 순수한 사랑 이야기로 남았다. 다만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의문점 하나. 타카토시는 25살에 15살 에미를 찾아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반대로 25살 에미가 15살 타카토시를 보러 가는 장면은 안 나와서 이 시기는 어떻게 된 건지 궁금증이 남았다.

6. 영화 속 루프(Loop) 정리

이 영화의 묘미는 타카토시가 에미에게, 에미는 다시 타카토시에게 해주는 대사나 행동이 완벽한 고리(Loop)를 이룬다는 점이다.

  • 생명의 은인: 가장 긴 루프. 35살의 에미가 5살의 타카토시를 구하고, 35살 타카토시가 5살의 에미를 구한다.
  • 초콜릿 카레: 에미가 타카토시에게 초콜릿을 넣은 카레를 만들어 준다. 훗날 타카토시는 부모님 댁에 가서 어머니에게 그 레시피를 전수받는다.
  • 운명의 대사: 타카토시의 마지막 날(에미의 첫날) 대사 “우리는 스쳐가는 게 아니야, 끝과 끝을 이은 원이 되어, 하나로 이어지는 거야. 둘이 하나의 생명인 거야.” 이 대사를 에미가 4일 차 파티에서 타카토시에게 다시 해준다.
  • 사진 상자: 에미가 30살에 10살의 타카토시에게 전달하는 상자(안에는 20살 때 찍은 사진이 들어있음).
  • 초상화: 타카토시가 20살 마지막 날에 에미의 초상화를 그리고, 25살 때 15살 에미에게 전달하는 루프.

7. N의 상상 (마치며)

둘의 나이를 꼭 같은 시점(20살)에 만나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다. 3살 정도 차이가 나서 17세-20세, 22세-15세 이런 시간 흐름이었다면 한 번 더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렇게 되면 미성년자와 성인의 만남이라 윤리적 문제가 될 수도 있고, 독자 입장에서 숫자가 딱 떨어지지 않아 헷갈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둘 사이에 나이 차로 인한 미묘한 위계 관계가 생길 수도 있어서, 가장 대등하고 아름다운 ‘스무 살’로 설정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시 한번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감성을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