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디프로필? “그 정도로는 성에 안 차서”
코로나 시국, 주변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병처럼 번진 것이 있었다. 바로 ‘바디프로필’. 다들 몇 달간 밥을 굶고 물까지 끊어가며 사진 한 장을 남기려 애쓰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결과물들이 내 눈에는 썩 성에 차지 않았다.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원래 몸이 좀 좋았다. (웃음) 굳이 식단을 안 해도, 친구들이 죽어라 관리해서 찍은 사진보다 지금 그냥 훌렁 벗고 찍은 내 몸이 더 나을 거라는 근거 있는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내 기준은 높았다. 만약 프로필을 찍는다면 전문 트레이너와 비견될 정도로 완벽하게 조각해서 찍고 싶었다. 하지만 직장 생활하며 밥만 굶어서 만드는 ‘마른 근육’으로는 그 퀄리티를 낼 수 없었고, 회사 다니면서 선수급 식단을 할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방향을 틀었다. ‘보여주기 위한 몸’ 말고 ‘기능하는 몸’을 증명하자. 이미 코로나 때문에 여행길이 막혀 홧김에 산 자전거로 서울-부산 종주를 마친 상태였고, 수영은 원래 할 줄 알았으니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내 30대는 누구보다 건강하고 강했다.” 이 문장을 증명하기 위해 나는 스튜디오 조명 대신 흙탕물 튀는 철인 3종(Triathlon)을 택했다.
2. 무작정 뛰어든 한강 (D-Month Practice)
대회 신청은 했지만, 오픈워터(강이나 바다 수영) 경험은 전무했다. 슈트 하나 덜렁 사서 무작정 한강 잠실 수중보를 찾았다. 동호회도, 파트너도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추적추적 내렸고, 다니던 수영장이 문을 닫아 수모도 없이 낡은 수경 하나 들고 간 상태였다.
한강변에 도착하니 수영복을 입은 분이 보였다. 뻔뻔함이 무기였다. 쭈뼛거리며 다가가 부탁드렸다. “저 야외 수영이 처음인데… 혹시 같이 건너주실 수 있나요?”
다행히 그분들도 충주 대회를 준비 중이셨고, 흔쾌히 나를 끼워주셨다. “긴장하지 말고, 정면 보면서 방향 잡으세요.”

흙탕물 속의 사투
입수 직후엔 생각보다 물도 안 차갑고 냄새도 없어 ‘할 만한데?’ 싶었다. 하지만 속도를 올리자마자 지옥이 시작됐다.
- 시야 제로: 낡은 수경에 습기가 차서 앞이 안 보인다.
- 방향 상실: 어두운 강물 위, 검은 슈트를 입은 일행들은 보이지 않았고, 고개를 들어 정면을 보면 흙탕물을 들이켰다.
- 현기증: 옆으로 호흡하려 하면 꽉 끼는 슈트 때문에 세상이 뱅글뱅글 돌았다.
결국 같이 가주시던 분이 뒤처진 나를 챙겨주신 덕분에 겨우 왕복을 마칠 수 있었다. 그분들은 *“고생했으니 아침 같이 먹자”*고 하셨지만, 나는 자전거와 달리기 훈련 핑계(사실은 멘탈이 나가서)로 거절했다.
이름도 못 여쭤보고 헤어져서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드라마처럼 실제 충주 대회장에서 그분을 다시 마주쳐 감사 인사를 전할 수 있었다. (세상은 좁고 철인은 더 좁다.)
3. D-1: 충주 탄금호, 그리고 ‘맥주 고문’
한강 물을 마시며 구르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결전의 날. 장소는 충주 탄금호. 나의 첫 철인 3종 도전을 응원하기 위해 온 가족이 총출동했다. 우리는 경기장 근처 펜션을 잡고 전야제를 즐기기로 했다.
문제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는 거다. 오랜만에 놀러 나온 가족들은 신이 났다. 시원한 맥주 캔을 따고, 맛있는 안주를 펼쳐 놓고 웃고 떠들며 파티를 벌였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인 나는… 구경만 해야 했다. 내일 새벽부터 물에 뛰어들고 페달을 밟아야 하는데 술을 마실 순 없었으니까. 눈앞에서 터지는 맥주 거품을 보며 침만 삼키는 심정이란.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나의 슬픔(?)도 깊어갔다.
4. 대회 당일: 20대는 어디에?
이른 아침, 경기장에 도착하니 묘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참가자 명단을 확인하는데, 전체 500여 명 중 20대 남자가 고작 20명 남짓이었다.

“다들 어디 갔지?” 참가자의 대다수는 40~50대 형님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XX 철인클럽’ 같은 동호회 유니폼을 맞춰 입고 왁자지껄하게 몸을 풀고 있었다. 장비도 으리으리했다.
반면, 멸종 위기종인 우리 20대 참가자들은 대부분 나처럼 혼자였다. 동호회 깃발 아래 뭉친 아저씨들의 끈끈한 전우애(?) 사이에서, 이어폰 꽂고 혼자 스트레칭하는 20대들의 고독한 모습. 묘한 소외감과 동질감을 동시에 느끼며 스타트 라인에 섰다.
5. Race & Data: 한강의 교훈, 실전의 기록
한강에서의 ‘매운맛’ 연습 덕분이었을까? 실전인 탄금호는 생각보다 수월했다.
🏊♂️ 수영 (Swim)
탄금호의 물은 한강보다 맑았고, 코스 라인도 명확했다. 30분 넘게 팔을 저으며 생각했다. ‘어제 못 마신 맥주가 기다린다.’

🚴♂️ 사이클 (Bike)
가장 자신 있었던 종목. 4050 형님들의 값비싼 에어로 바이크 사이를 내 자전거로 뚫고 지나가는 쾌감이 상당했다. (엔지니어의 엔진 성능 증명!)
🏃♂️ 달리기 (Run)
몸이 더워져서 마라톤 경기에서 보는거처럼 몸에 물을 뿌렸는데 양말이 젖으면서 발이 다 까지는 느낌이 났다. 그래서 반환점 돌자마자 여동생에게 양말을 가져오라 시켜서 갈아신었다.
📊 데이터 분석: 무모함이 만들어낸 결과
한강에서 처음 연습했던 날(3시간 50분)과 실제 대회 기록을 비교해 보면 극적인 성장이 보인다.
| 구분 | 한강 연습 (1.8km 기준 환산) | 충주 대회 (실전) | 비고 |
|---|---|---|---|
| 수영 | 56분 | 37분 42초 | 약 19분 단축 |
| 자전거 | 1시간 20분 | 1시간 04분 54초 | 약 15분 단축 |
| 달리기 | 1시간 12분 | 1시간 10분 | 소폭 단축 |
| 총합 | 3시간 50분 | 약 2시간 50분대 |
- 수영/자전거: 상위권 선수들과 몇 분 차이 나지 않을 정도로 기록이 잘 나왔다.
- 달리기: 사이클에서 다리를 너무 털었는지 조금 아쉬운 기록이다.

📸 Race Moments

6. 마치며
4050 형님들의 열정, 20대의 패기, 그리고 가족들의 응원(과 맥주 고문). 이 모든 것이 섞여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바디프로필 사진은 없지만, 나는 내 몸으로 직접 부딪혀 얻은 이 메달이 훨씬 더 자랑스럽다.
보여주기식이 아닌, 진짜 내 몸을 확인하고 싶다면? 한강으로 가라. 그리고 뛰어들어라. (단, 수경은 좋은 거 쓰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