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llenge] 633km의 여정: 코로나를 뚫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 국토종주)

[Challenge] 633km의 여정: 코로나를 뚫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 국토종주)

1. 프롤로그: 왜 사서 고생인가?

코로나19가 모든 해외 하늘길을 막아버렸다. 여행을 좋아하던 나에게는 가혹한 시기였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를 못 타면 자전거를 타면 되잖아? 부산 할머니 댁까지 자전거로 가보자.”

🚴‍♂️ 사전 연습: 춘천행 실패와 장비의 중요성

무작정 부산으로 쏠 수는 없어서, 사전 연습 겸 춘천 라이딩을 시도했다.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아버지와 여동생과 함께 야심 차게 출발했다. 하지만 중간에 비가 쏟아져 도로가 유실되었고, 결국 청평을 코앞에 두고 돌아와야 했다. 동생은 힘들다며 중간에 지하철로 탈주(?)했고, 결국 아버지와 나 둘이서 해 질 녘 어두운 길을 뚫고 인천으로 복귀했다.

이날의 가장 큰 교훈은 ‘장비빨’이었다. 아버지의 산악자전거(MTB)는 바퀴가 크고 무거워 장거리 도로 주행엔 쥐약이었다. 결국 부산 종주를 위해 내 전용 로드 자전거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역시 운동은 장비부터.)


2. Day 1: 서울 탈출 (175km)

경로: 아라뱃길(인천) -> 한강 -> 비내섬 인증센터

새 자전거와 함께 어머니의 차를 타고 아라뱃길에 도착했다. 드디어 시작이다. 초반 한강 구간은 아버지 회사 동료분들과 팩(Pack)을 이뤄 달렸다. 가을바람은 시원했고, 지나가는 수많은 라이더 속에 섞여 달리니 ‘내가 뭔가 대단한 걸 하고 있다’는 고양감이 차올랐다.

첫날이라 체력도 컨디션도 최상이었다. 해가 질 무렵 충주 비내섬 인증센터에 도착하며 깔끔하게 첫날을 마무리했다.

컨디션 좋던 출발
컨디션 좋던 출발
  • 주행 거리: 175km
  • 상태: 의욕 과다, 컨디션 최상

3. Day 2: 엉덩이의 배신과 이화령 (132km)

경로: 비내섬 -> 충주댐 -> 문경새재(이화령) -> 상풍교

아침에 눈을 떴는데 엉덩이가 이상했다. 탱탱 부어있었다. 멍이 든 것도 아닌데 안쪽이 혹처럼 볼록해진 기분. 12시간 넘게 자전거를 타본 적이 없는데, ‘패드 바지(빕숏)’ 없이 일반 운동복을 입고 딱딱한 안장에 앉아있던 게 화근이었다. 앉을 때마다 고통이 밀려왔다.

서울과는 다른 야생의 길

서울을 벗어나니 편의점이 사라졌다. 보급의 천국 한강과 달리, 지방 자전거길은 허허벌판이었다. 겨우 동네 슈퍼마켓 하나를 찾아 비상식량을 확보하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충주댐 넘어 캠핑하는 사람들
충주댐 넘어 캠핑하는 사람들
자전거 수리
자전거 수리

점심을 먹고 나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타이어 펑크가 났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수리하고 다시 출발.

마의 구간, 이화령

끝이 없을 것 같은 오르막, 국토종주의 난코스 문경새재(이화령)가 나타났다. 옛날 사람들이 왜 이곳을 방어 요충지로 썼는지 몸으로 깨달았다. 옆쪽 고속도로 터널로 시원하게 달리는 차들이 얼마나 부럽던지. “나도 터널로 가면 5분이면 갈 텐데…”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꾸역꾸역 정상에 올랐다.

보상은 확실했다. 신나는 내리막길 질주! 불정역 폐역에 핀 코스모스 밭을 구경하고, 상풍교 인근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우리 말고도 종주하는 분들이 꽤 있어 묘한 동질감이 느껴지는 밤이었다.

  • 주행 거리: 132km
  • 상태: 엉덩이 파괴, 멘탈 강화 훈련 중

4. Day 3: 풍경, 그리고 야간 산행 (203km)

경로: 상풍교 -> 낙단보 -> 칠곡보 -> 합천창녕보

게스트하우스 사진
게스트하우스 사진

게스트하우스에 있는 공구로 자전거를 정비하고 출발했다. 낙단보, 칠곡보를 지나며 만난 풍경은 차를 타고 다닐 땐 절대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핑크뮬리가 흐드러진 들판,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 강변 정자의 고즈넉함.

너무 여유를 부렸던 탓일까. 해가 져버렸는데 계획했던 목적지는 한참 남았다. 결국 달빛에 의지해 산 하나를 넘었다. 숙소도 없는 시골 마을에 도착해, 이장님이 운영하시는 민박집에서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었다. 하루 200km를 넘게 타다니, 인간의 한계를 시험한 날이었다.

  • 주행 거리: 203km
  • 상태: 다리는 기계처럼 움직임, 감성은 충만

5. Day 4: 엔지니어의 오지랖과 부상 투혼 (105km)

경로: 합천 -> 부산(을숙도)

이제 부산이 코앞이다. “저녁은 할머니 댁에서 집밥이다!“를 외치며 여유롭게 출발했다.

🔧 길 위에서 만난 부자(父子)

자전거 고쳐준 부자
자전거 고쳐준 부자

가는 길에 자전거 체인이 끊어져 곤란해하는 아버지와 아들을 만났다. 초등학생 아들이 자전거를 좋아해서 부산까지 도전 중이라는데, 아버지는 정비 방법을 몰라 20km 떨어진 읍내까지 걸어가려던 참이었다고 했다. 사대강 길 한복판이라 택시도 안 잡히는 상황.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챙겨 온 기초 정비 도구를 꺼내 끊어진 체인을 연결해 드렸다. 옆에서 신기하게 쳐다보는 꼬마에게 아껴둔 초코바를 건넸다. 두 분 다 가방이 너무 작아 보급품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고맙다며 다시 페달을 밟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니, 내 배고픔보다 뿌듯함이 더 컸다.

🇫🇷 낭만의 프랑스 캠퍼들

낭만의 프랑스 캠퍼들
낭만의 프랑스 캠퍼들

한참을 가다 아버지 회사 직원분들을 우연히 마주쳤다. 부산에서 출발해 서울로 거슬러 올라가는 중이라는데, 자전거에 캠핑 장비를 잔뜩 싣고 있었다. “우리는 캠핑하며 갑니다~“라며 웃는 그들에게서 낭만 치사량을 느꼈다. (정말 멋진 프랑스 분들이었다.)

🚑 마지막 복병

거의 다 왔다고 방심했을 때, 사고가 터졌다. 자전거를 타는데 고글에 ‘탁’하고 무언가 묵직한 게 부딪혔다. 돌이 튀었나 싶었는데, 갑자기 허벅지가 불타는 듯이 아파왔다. 멈춰서 보니 정체불명의 벌레에 물린(혹은 쏘인) 것 같았다. 순식간에 붓고 열이 펄펄 끓었다. 부산 시내에 진입했으니 지하철을 탈 수도 있었지만,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웠다. 결국 한 발로 페달링을 하며 쩔뚝거리는 자전거로 완주에 성공했다.

  • 주행 거리: 105km
  • 총 주행 거리: 615km+ (길 잃음 포함)
완주사진
완주사진

6. 에필로그: 다음엔 무박 부산?

마지막 날 거리가 짧았던 걸 생각하면, 조금 더 타이트하게 탔으면 3일 만에도 가능했을 것 같다. 안장통, 펑크, 야간 라이딩, 정비, 그리고 부상까지. 다사다난했지만 자전거 하나로 국토를 종단했다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다음 목표?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무박 부산(랜도너스)’이나 ‘1박 2일’ 챌린지에 도전해 봐야겠다. (물론 엉덩이가 허락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