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오전에는 드리프트, 오후에는 돌무덤: 용인에서 보낸 여덟 시간

[Travel] 오전에는 드리프트, 오후에는 돌무덤: 용인에서 보낸 여덟 시간

1. 아침 여덟 시 사십오 분: 주차장부터 전시장이었다

용인의 AMG 스피드웨이에 도착한 것은 아침 여덟 시 사십오 분이었다. 9월인데 하늘이 지나치게 파랬고 뒤편 산은 아직 완전한 초록이었다.

주차장이라기보다 전시장에 가까웠다. 검은 SL 63의 옆구리에 ESCAPE THE ORDINARY 라는 글자가 붙어 있었고, 그 뒤로 AMG 배지를 단 차들이 줄줄이 서 있었다.

주차장에 늘어선 AMG
도착하자마자 보인 SL 63

나중에 알았는데 이날이 하필 2026년 하반기 프로그램이 시작하는 첫날이었다. 벤츠코리아가 AMG 익스피리언스와 SUV 익스피리언스를 9월 4일부터 다시 연다고 발표한 바로 그날이다.

2. 실력으로 조를 나눈다: 하필 A그룹

들어갈 때 음주 측정을 하고 면허증을 확인한 다음 이름표를 받는다. 빨간 딱지는 실력별 조 편성이고, 서킷 주행 경험과 스피드웨이 참여 이력을 기준으로 A조부터 D조까지 나눈다.

목에 건 이름표
이름표의 빨간 딱지가 조 편성이다

나는 서킷에서 혼자 주행해 본 적이 있고 다른 회사 드라이빙 교육도 받아 둔 터라 A그룹에 배치됐다. 신청서에 적은 이력이 그대로 조 번호가 되어 돌아온 셈이다.

문제는 같은 조 사람들이었다. 시뮬레이션 드라이빙을 오래 해 온 분들과 실제로 운전을 잘하는 분들이 섞여 있었고, 나는 하루 내내 마지막 순서인 기록 계측에서 내가 제일 늦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붙들고 있었다.

내가 신청한 것은 Ultimate (AMG + SUV + G) 라는 이름의 종일 과정이다. 오전에는 스피드웨이에서 AMG를 타고 오후에는 그 옆 산의 오프로드 코스로 넘어가는 구성이고, 예약 페이지의 안내는 09:00부터 17:30까지다.

피트 건물의 고객 라운지
트랙이 보이는 고객 라운지

트랙 자체도 내력이 있다. 여기는 1995년에 용인 모터파크로 문을 연 국내 첫 상설 서킷이고, 2009년 공사로 4.3km 까지 늘어났다가 2018년부터 AMG 스피드웨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AMG 브랜딩이 붙은 트랙으로는 세계에서 처음이라고 한다.

3. 앞사람이 너무 잘했다: 오전의 드리프트와 드래그

오전 순서는 트랙이었다. 차량 제어와 코너링, 브레이크와 레인 체인지, 드래그 레이싱이 차례로 이어졌고 세션마다 타는 차가 바뀌었다.

이 과정의 공식 항목만 늘어놓아도 드래그 레이싱과 차량 제어, 브레이크와 레인 체인지, 리드 앤드 팔로우, 오토 크로스 미니 게임, 택시 드라이빙에 오프로드까지다. 하루에 이걸 다 한다는 말이 처음에는 실감이 안 났다.

드리프트는 우리 조에서 처음 들어간 분이 너무 잘했고, 저렇게 하는 거구나 나도 되겠는데 하는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한 번 돌리는 것까지는 됐는데, 미끄러진 상태를 이어서 유지하는 연속 드리프트는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핸들과 가속 페달로 계속 균형을 잡아 줘야 하고 그 박자가 내 손에는 아직 없어서, 몇 바퀴를 돌다 말고 그대로 풀려 버렸다.

드래그는 두 대를 나란히 세워 놓고 출발선에서 떠나보내는 순서다. 앞서 다녀온 분의 후기에는 E 53 하이브리드와 GT 63 S 를 붙여 놓았다고 적혀 있던데, 내가 간 날의 조합은 그것이 아니었다.

이 시간의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운전석에 앉아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고, 그래서 오전은 기억에만 남았다.

4. 스포츠카에 왜 안마 시트가 있을까: AMG 오너의 딴생각

나는 AMG E 53 오너다. 그래서 AMG 자체가 낯설지는 않은데, 정작 다른 AMG를 타 본 적은 없었다. 이날 여러 대를 바꿔 가며 타 본 것이 그래서 재미있었다.

내 차를 처음 탔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이 하나 있다. 성능을 앞세운 차에 안마 시트가 왜 들어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트랙에서 쓸 일은 절대 없는 기능이다.

그런데 이날 바꿔 탄 AMG 고급 모델에는 전부 안마 시트가 들어 있었고, 그제야 이 회사가 파는 물건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스포츠 주행이 되는 고급차, 그러니까 성능은 따로 떼어 파는 옵션이 아니라 고급의 한 항목이라는 쪽에 가깝다.

그 옆에 놓고 보면 BMW는 어딘가 가볍다는 느낌이 있다. 값이 싸 보인다는 말에 가까운데, 팬들이 들으면 반박할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M 시리즈처럼 성능에만 몰아 준 차가 벤츠에는 없다는 것이 아쉬워진다.

5. 뚜껑이 8기통 엔진인 도시락

점심은 도시락이었다. 뚜껑이 V8 비터보 엔진 커버 모양이었고 V8 BITURBOhandcrafted by AMG 가 그대로 찍혀 있었다.

엔진 커버 모양의 도시락 뚜껑
뚜껑이 8기통 엔진 커버다

열어 보니 칸막이에도 AMG 로고가 새겨져 있었고, 잡곡밥에 불고기와 새우와 튀김이 칸칸이 담긴 평범한 구성인데 그릇 하나로 이렇게까지 하는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열어 본 도시락
칸막이에도 AMG 로고가 있다

6. 점심시간에 마이바흐, 그리고 제자리에서 도는 G

밥을 먹고 나서는 차를 구경했다. 투톤으로 칠한 마이바흐 S-클래스의 뒷자리에 앉아 봤는데, 앞좌석 등받이마다 화면이 붙어 있고 다리를 다 뻗어도 앞이 남았다.

마이바흐 뒷자리
앞좌석 등받이마다 화면이 붙어 있다

오전에 뒤를 미끄러뜨리던 차와 같은 회사 차라는 것이 잘 붙지 않았다. 한쪽은 뒤를 흘려 보내라고 만든 차고 한쪽은 뒷자리에서 잠들라고 만든 차다.

마이바흐 옆에서
점심시간의 마이바흐

같은 시간에 전기 G-클래스가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도는 것을 보여 줬다. 바퀴마다 모터가 하나씩 들어 있어 좌우를 반대로 돌리면 차가 그 자리에서 빙 도는데, 이름은 G-턴이고 제자리에서 두 바퀴까지 돈다. 네모난 덩치가 그러고 있는 장면은 실제로 보면 좀 비현실적이다.

7. 살수차와 콘 사이의 파란 G: 오후로 넘어가는 길

한 시 사십 분쯤 스피드웨이 쪽을 보니 파란 G-클래스가 콘 사이를 돌고 있었다. 옆에는 살수차가 서 있었고 전광판에는 AMG SPEEDWAY 글자가 떠 있었다.

콘 코스를 도는 파란 G
살수차가 물을 뿌린 패드 위의 G-클래스

오전에 내가 있던 자리를 밖에서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젖은 노면 위에서 저 네모난 차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제는 안다.

두 시가 되기 전에 인스트럭터가 모는 SUV에 올라탔다. 운전석에는 페트로나스 로고가 박힌 셔츠를 입은 사람이 앉아 있었고, 차는 포장도로를 벗어나 언덕 쪽으로 올라갔다.

인스트럭터가 모는 차에서
포장도로를 벗어나 언덕으로

올라간 자리에서는 스피드웨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오전 내내 돌던 트랙이 저 아래 줄처럼 깔려 있었다.

언덕에서 내려다본 스피드웨이
오전 내내 돌던 트랙

8. 코스 A와 코스 G: 지도부터 봤다

베이스캠프에는 전시 트레일러가 한 대 서 있었다. 벽 가득 도장 색상 원판이 걸려 있고 안쪽에 큰 화면이 켜진, 이동식 쇼룸 같은 공간이었다.

색상 원판이 걸린 트레일러
도장 색상 원판이 벽을 채운 전시 트레일러

그 안에서 코스 지도를 봤다. 길은 둘로 갈린다. Course A 는 업&다운 힐과 우드 레일, G 레이크, 통나무 범피, 콘, 샌드, 락 트위스트를 지나 베이스캠프로 들어오고, Course G 는 G Rock과 사이드 슬로프, 머드, 모굴이 이어지는 G-클래스 전용 길이다.

코스 지도
코스 A와 코스 G

이름만 늘어놓으면 놀이공원 안내도 같은데, 실제로는 부지 26,000㎡ 에 자연 지형을 그대로 남겨 만든 상설 코스다. 2024년 10월에 문을 열었고 국내에 이런 곳은 여기뿐이라고 한다.

인스트럭터도 그냥 뽑아 세운 사람들이 아니다. 오프로더의 고향이라는 오스트리아 그라츠의 G 익스피리언스 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온다. 차를 타 보게 하는 곳이 아니라 가르치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시설 곳곳에서 계속 한다.

9. 옆으로 기울어진 채 들어가는 차: 오후의 오프로드

코스 입구에는 주황색 G-클래스가 돌무덤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바퀴 하나를 허공에 띄운 자세로 고정해 둔 전시물인데, 곧 할 일을 미리 보여 주는 간판이기도 했다.

돌무덤 위의 G
바퀴 하나를 띄운 채 고정해 둔 전시물

그다음은 내 차례였다. 운전석에 앉아 흙길로 들어섰고 옆에는 인스트럭터가 탔다.

핸들을 잡고
흙길로 들어서는 G 63

기억에 가장 남은 것은 경사였는데, 내리막 앞에 서면 보닛 너머로 길이 아예 보이지 않아서 계기판 화면과 옆에서 들려오는 지시만 믿고 페달에서 발을 뗀 채로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기 직전
스태프가 서서 길을 잡아 준다

옆에서 보는 쪽이 더 무서울 때도 있었다. 앞 차가 사이드 슬로프로 들어가는데 차체가 심각하게 기운 채로 비탈을 물고 지나갔다. 저 각도에서 안 넘어가는구나 싶었다.

뒷자리에 앉아 있을 때는 앞좌석이 더 잘 보였다. 인스트럭터는 흙길 한복판에서도 계기판 화면을 넘겨 가며 무엇을 보라고 계속 일러 줬다.

뒷자리에서 본 앞좌석
흙길 위에서도 설명은 계속된다

물웅덩이를 건너는 코스는 이날 하지 않았다. 최대 수심 80cm 짜리 도강 구간이 G 코스에 있고 후기마다 그 사진이 빠지지 않는데, 우리 조 순서에는 들어 있지 않았다.

오전에 트랙에서 배운 것과 오후에 산에서 배운 것이 정확히 반대였다. 트랙에서는 어떻게 미끄러뜨릴지를 배웠고 산에서는 어떻게 미끄러지지 않을지를 배웠다.

10. 한 사람이 한 엔진을: 보닛을 열어 보다

주행이 끝나고 보닛을 열어 봤다. 흙길을 기어오르던 그 엔진은 4.0리터 V8 비터보로 585마력을 낸다. AMG 글자가 박힌 커버 옆에 명판이 하나 붙어 있고, 거기에 이 엔진을 조립한 사람의 서명이 적혀 있었다.

수제 엔진의 서명 명판
한 사람이 끝까지 조립하고 서명을 남긴다

점심때 그 서명을 도시락 뚜껑에서 먼저 봤다는 사실이 그제야 떠올랐다. 뚜껑에 찍혀 나온 문구를 흙먼지를 쓴 차의 보닛 아래에서 다시 만난 셈이다.

먼지를 쓴 은색 G 63 앞에서 사진도 여러 장 찍었다. 같은 자세로 스무 장쯤 찍은 것을 보면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먼지를 쓴 G 63 앞에서
오후를 다 쓰고 나온 G 63

11. 하루 종일 걱정하던 순서: 마지막 기록 계측

다섯 시가 지나 다시 스피드웨이로 나왔다. 해가 낮아진 포장 패드 위에 파란 콘과 주황 콘이 길게 깔려 있었고 그 끝에 흰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콘이 깔린 패드
다섯 시가 지난 스피드웨이

아침부터 신경 쓰고 있던 그 순서였고, 시뮬레이션을 오래 한 분들과 운전을 잘하는 분들 사이에서 시간을 재는 일이라 출발선에 설 때까지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공식 이름은 오토 크로스고 흔히 짐카나라고 부르는, 콘 사이를 빠져나가는 그 주행이다. 참가자끼리 기록을 겨뤄 상위 세 명에게 경품을 준다. 앞서 다녀온 분의 후기를 보면 25초 면 거의 1등이고 잘 타는 사람이 2728초, 보통은 2930초에 들어오며, 콘을 넘어뜨리면 3초가 붙고 정지선을 넘겨 서면 5초가 붙는다.

내 기록이 몇 등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앞사람들과 1초 안쪽으로 붙어 있었으니 상위권이기는 했을 것이다. 하루 종일 붙들고 있던 걱정치고는 싱겁게 끝났다.

조 번호가 순위를 보장하지도 않는다. 올해 4월 기록을 보면 입문자들이 모인 D조에서 1등이 나왔고 2등과 3등이 A조였다. 아침에 A조 딱지를 받고 마음이 무거워졌던 것은 그러니까 나 혼자만의 사정이었다.

마지막은 택시 드라이빙이었다. 인스트럭터가 몰고 나는 옆자리에 앉아서 같은 코스를 달리는 순서인데, 하루 종일 내가 통과하던 길이 사람이 바뀌자 전혀 다른 길이 됐다.

차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흐릿하다. CLA 45 였던 것 같기도 하고 GT 43 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 앞서 다녀온 분의 후기에는 GT 63 으로 적혀 있으니 날마다 다른 모양이다.

12. 한 사람 한 대씩 대신 차를 바꿔 가며: 태안과 비교하면

저녁은 근처에서 편육과 막국수로 먹었다. 하루 종일 트랙과 흙길에 있다가 찬 육수를 마시니 그제야 끝났다는 실감이 났다.

저녁으로 먹은 편육
하루를 끝내고 먹은 편육
막국수
찬 육수를 마시니 끝난 것이 실감 났다

돌아오는 길에 태안의 현대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와 자꾸 비교하게 됐다. 거기는 레벨 3까지 들었는데, 한 사람에게 한 대를 주고 같은 차로 계속 연습시키며 실력을 나누는 방식이다. 운전을 늘리는 데는 그쪽이 맞다.

이날은 반대여서, 차를 바꿔 가며 서킷 주행과 드래그, 짐카나, 드리프트에 오프로드까지 하루에 다 해 봤다. 무엇을 배웠느냐보다 무엇을 타 봤느냐가 남는 구성인데, 일 년에 하루쯤은 이런 날이 있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수도권에서 가까워서, 태안까지 내려가는 날과 용인까지 다녀오는 날은 하루의 무게가 다르다.

차를 바꿔 가며 하루를 다 쓰고 나니 내 차에 대해서도 몰랐던 것을 알게 됐다. 안마 시트가 왜 거기 붙어 있는지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아쉬운 것도 하나 남았다. 이렇게 하루를 태워 놓고도, M 시리즈처럼 성능에만 몰아 준 벤츠 한 대가 그 목록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체험 정보

시각일정
08:45AMG 스피드웨이 도착, 음주 측정과 면허 확인, 조 편성
09:30~11:30차량 제어와 코너링, 브레이크 & 레인 체인지, 드래그 레이싱
11:50점심 도시락
12:30~13:30전시차 관람, 전기 G-클래스의 G-턴 시연
14:00~15:10SUV 익스피리언스 센터로 이동, 코스 브리핑, G 63 오프로드 주행
17:20오토 크로스(짐카나) 기록 계측과 택시 드라이빙

신청한 과정은 Ultimate (AMG + SUV + G), 50만원이다. 예약 페이지에는 09:00~17:30 여덟 시간으로 적혀 있고 벤츠코리아의 하반기 발표 자료에는 8시간 50분으로 나온다. 예약은 네이버 예약으로 하고 만 18세 이상 면허 소지자면 참가할 수 있다.

같은 곳에서 파는 다른 과정은 SUV 드라이빙이 10만원에 2시간 15분, G 드라이빙이 20만원에 2시간 15분, 둘을 합친 것이 30만원에 3시간 20분이다. 트랙만 도는 AMG 쪽은 나이트 서킷이 20만원에 2시간, 디스커버가 60만원에 4시간, 퍼포먼스가 100만원에 8시간 30분, 어드밴스드가 200만원에 1박 2일 15시간이다.

오프로드 코스에서 쓰는 차는 GLE와 GLS, G 450 d, G 580, AMG GLS 63, AMG G 63이고 트랙 쪽은 GT 43과 GT 55, GT 63 S E 퍼포먼스, SL 43, SL 63, A 45, CLA 45다. 직접 몰지 않고 타기만 하는 G-클래스 택시 드라이빙은 만 6세부터 앉을 수 있다.

일행은 동승할 수 없어서 라운지에서 기다려야 한다. 하루를 꼬박 쓰는 일정이라 체력도 생각보다 많이 든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다녀오시기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