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랜 시도 끝에 개인 블로그를 내 도메인으로 서빙하게 되었습니다. 도메인을 연결하고 첫 글을 쓰려니, 문득 제가 처음 홈페이지를 만들었던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이 떠오릅니다.
1. FTP와 나모 웹에디터의 시대
당시 웹 호스팅 업체에서 10MB 남짓한 공간을 무료로 할당받아, ‘나모 웹에디터’ 같은 위지윅(WYSIWYG) 툴로 HTML 파일을 만들던 시절이었습니다. 수정할 때마다 FTP로 파일을 덮어씌워야 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왜 FTP가 주류였을까 싶지만, 하드웨어를 생각하면 이해가 갑니다. 당시 CPU에는 AES 같은 암호화 명령어가 내장되어 있지 않았으니까요. 제가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받았던 인텔 울프데일(Wolfdale) CPU가 되어서야 AES 명령어를 처음 써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랬던 꼬마가 이제는 AES-GCM을 활용해 MACSec, IPSec 반도체를 설계하는 엔지니어가 되었다니, 기술의 발전과 저의 성장이 묘하게 겹쳐 보여 신기할 따름입니다.
2. 제로보드와 APM, 그리고 Windows XP의 추억
정적 웹의 시대가 저물고, ‘제로보드(ZeroBoard)‘가 등장하며 웹은 커뮤니티의 형태로 진화했습니다. 상호작용하는 웹이 너무나 멋져 보였기에, 저도 윈도우 XP(Windows XP)에 아파치(Apache), PHP, MySQL을 설치하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리눅스나 도커(Docker)가 당연한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윈도우 서버가 대세였고 fast-cgi를 연동하느라 숱한 삽질을 해야 했습니다. CLI가 익숙지 않아 phpmyadmin을 필수로 깔아야 했고, 친구들과 쓸 포인트 시스템이나 추천 기능을 만들며 DB 테이블을 뜯어고치기도 했습니다. 비록 커뮤니티로 대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그때의 삽질은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3. 네트워크 대역폭과 렌더링의 변화
그 시절 인터넷은 ADSL, VDSL 수준의 10Mbps 대역폭이 고작이었습니다. 스마트폰도 디지털카메라도 흔치 않아 이미지 데이터가 적었죠. 네트워크 레이턴시가 컸기에, 서버에서 완성된 HTML을 보내주는 SSR(Server Side Rendering) 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네트워크가 빨라지고 AJAX가 등장하면서 웹은 부분만 업데이트되는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Nginx의 비동기 처리가 각광받기 시작했고, Google이 V8 엔진을 내놓으며 자바스크립트는 서버와 클라이언트를 아우르는 대세 언어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TypeScript와 ES 표준이 그 자리를 견고히 하고 있죠.
이토록 거대한 웹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오며, 저는 2025년의 블로그 도구로 Hugo를 선택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겠습니다.